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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세상이 나의 세상과는 달라져 보이고 있었음을 몰랐네요.

천재드러머 2023. 1. 25. 14:58

설명절, 가족들과 한자리에 모였다.

시끌벅적함이 한껏 지나가고 우리집에서 하룻밤 지내고 가시게된 아버지와 앉은 조용한 식탁에서 늦은 연세까지 일을 하시며 겪고 계신 세상 속에서의 어려움을 하나 둘씩 듣게 되었다.

'아버지는 요즘따라 거래처 사장들이 젊어지다보니 그 세대를 상대하는게 어렵기도 하지만 정작 가장 큰 난관은 젊은 사장들의 젊은 감성이 담긴 영어 간판이야. 잘 읽지를 못하니...매번 어려울 때가 있고 그때마다 다시 전화를 걸어 가게 위치를 물어보면 간판도 못 읽냐는 식의 수화기 너머의 한 숨 소리가 이따금씩 따갑게 귀에 꽂힌단다.'

영어간판?
아버지에 비해 젊은 나는 그게 어려움이 될 것이라 전혀 생각을 못했기에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댁으로 돌아가시는 아버지를 배웅하고 아내와 함께 동네 쇼핑몰 로비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오늘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삶 속에서의 어려움들을 다시금 되짚어 봤다.

로비 한가운데에 서서 360도로 1층에 입점되어 있는 가게들의 간판을 둘러보고, 쇼핑몰의 각종 홍보물을 살펴본 나는 절반 이상이 영어로 쓰여져 있는 것을 새삼 발견하게 되었고 그 순간 눈 앞이 캄캄해지며 아버지의 시선에서 그것들을 보게 되었다.

어두웠다.
세상의 절반이 어두워 보였다.
70여년의 세월을 한국땅에서 태어나 자라고 살아왔것만 지금 바라보는 세상의 절반은 어둠으로 가득차 있었다.

내 눈에는 눈물이 차올랐다.
지금껏 아버지께서는 점점 어두워져가는 세상 속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기 위해 혼자의 힘으로 나름대로의 방식을 통해 버티며 살아가고 계셨던 것이다.

눈 앞에 간판을 확인하는 이 간단한 일이 두려웠고, 벽과 기둥에 붙은 영어로 가득찬 홍보물들을 보는 것이 두려웠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한 숨 소리가 내 귓가에 맴돌기 시작했고 눈 앞에 글자들이 도저히 읽을 수도 이해 할 수도 없는 꼬부랑 글씨로 보이며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할 지 겁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사는 대한민국이 세계를 이끌어가는 멋진 리더십 국가가 되어가고 우리 문화가 세계에 알려지며 오고 싶은 관광대국이 되어가며 영어는 이제 또 하나의 필수 언어처럼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버지의 세대에서는 이러한 현재를 준비하기에 부족한 시스템이었기에 맞닥뜨린 어려움이 충분히 와닿고 얼마나 힘드셨을까라는 생각이 내 머리속에 가득했다.

그래서 작은 목표를 하나 세웠다.
빠른 시일 내에 아버지를 모시고 가까운 이웃 국가로의 여행을 계획하여 그곳에서 간단한 메뉴들을 주문해보는 체험 아닌 체험을 해보는 것이다.

'Excuse me, this one...this one...plz!!'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자신감은 채워질 수 있을 것이다!
즐거운 인생은 이렇게 만들어지는게 아닐까?

이글은 어떠함을 전하기 보다는 내가 느꼈던 아버지의 시선에서의 세상을 말하고 싶었고, 그 마음의 어려움이 나에게 너무나 리얼하게 느껴졌기에 자식된 도리에서의 가슴 한 켠의 찡함을 나누고 싶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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